2010-11-21 14:06
유명균 기획展 - Time Travel 유명균 미술로부터 나와서 - 유명균의 전개에서 발췌 치바시게오 (미술평론가) 최근의 회화작품에서는 이전의 작품과 무엇이 변화하고 있는가? 그림의 표정 그 자체가 다른 것은 분명하다. 이전의 그림은 먹과 짙은 갈색으로 인상적으로는 거의 모노크롬에 가까웠다. 그것이 신작에서는 흑(黑)이 주가 되는 것도 있지만 색채도 나타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회화의 제작 방법이 다르다. 최근의 회화에는 화면이 천이나 종이를 수평으로 놓고서 물감을 물을 묻혀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화면상에 물감을 흘려보내고 움직이는 것으로 화면을 만든다. 그리고 그 위에 송풍기로 바람을 보내어 화면상에 물감이 더욱 움직여 나가게 한다. 그렇게 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여기에서 유명균은 보통의 의미로서 그리고 있지는 않다. 그가 하고 있는 것은 유동적으로 되어진 물감을 움직인다든지 바람을 보내어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 자신이 만들고 있는 것에는 틀림이 없지만 반 이상은 화면상의 유동적인 물감이 불어오는 바람의 힘 등을 빌려서 스스로 화면을 만들어 나간다라고 말할 수 있다. 전에 세계에서 몇 사람이 실험했다. 그저 비슷한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지금까지의 예로 보자면, 아무래도 쉬레알리즘의 「오토매니즘(心的自動記述)」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르겠으나, 자신이 무의식 상태의 경우에서 생겨나는 형을 찾으려고 의도하는 작가가 상당수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서 생겨나는 형을 찾으려고 의도하는 작가가상당수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인간의 의지가 관여할 수 없는 물질(물감) 그 자체의 성질이라든지 물리적인 힘(물감이 중력으로 흘러내린다든지 바람으로 흐르게 하는 것)에 제작을 맡기는 것으로서 새로운 회화를 손에 넣으려고 하는 경우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위의 경우를 비교하면 유명균의 그림에서는 그러한 느낌을 받지는 않는다. 뭔가의 형태라든가 이미지를 그리려고 하는 것을 아무리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의 그림의 화면상에 존재하는 검은 색, 그 곳에서 어떠한 형이라든지 이미지를 연상하려는 것은 자유지만 그것은 자유만으로 거의 의미는 없다. 그는 그러한 것을 하려고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회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내 자신의 눈과 머리가 내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현기증을 일으킨다. 나의 눈에 그 검정 색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화면이 뚜렷이 보아진다. 하지만 그 속에서 어떠한 이미지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하나의 추상화를 보려고 하여도 「검」은 부분과 그 이외의 「바탕」과의 관계에는 구성이라고 하는 의도가 거의 없고, 혹은 색조의 밸란스도 추상회화라고 하는 의미로 보자면 그 곳에는 전혀 고려되어지지 않은 것이다. 말하자면 내 눈길의 감상, 이것은 보통의 의미로부터 회화는 아니라고 나에게 전해온다. 나의 시각은 종래의 회화를 보려는 자세로 그의 그림속으로 들어가면 이쪽저쪽에서 방황할 뿐이다. 그러한 시각의 방황을 반복해서 나의 머리는 그가 회화로서가 아닌 회화를 하려고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도달된다. 회화가 아닌 뭔가를 하려고 한다고 하는 그러한 생각을 한다. 그러면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곧바로 알 수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나는 말하자면 머리가 혼돈 되는 체험 속으로 놓여진다. 물감에 혼합되는 물의 양을 많이 하고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화폭을 움직이면 유동적으로 되어진 물감을 화가는 통제할 수 없다. 더욱이 검정색을 사용한 일종의 형을 거기에 만들려고 하는 경우에도 송풍기의 바람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는 이것도 부분적으로 밖에 통제할 수 없다. 말하자면 그는 자기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방법으로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어한다. 혹은 자기가 통제 할 수 없는 뭔가를 창조하려고 하는 것이다. 혹은 자기가 통제 할 수 없는 뭔가를 창조하려고 하는 것이다. 라고 하면 이것은 지금까지의 회화에 대해서 정반대의 개념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기법 없는 방법에 있어서 정반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회화 개념 그 자체의 측면에 있어서 정반대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회화라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감각의 세계에 있으며 감각의 논리에 따라서 화가가 한 장의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그 최후의 장면에는 그가 통제 할 수 없는 목소리에 따르곤 한다. 그것은 자주 잇는 일이지만 원래 회화를 향한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고 그 결과도 또한 확실한 한 점의 회화작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명균이 최근의 평면작품에서 하고자 하고 있는 것은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회화로부터 벗어난 것에 있다. 전통적인 회화, 근대의 회화 그 연장선 위에 위치되어 있는 지금의 회화로부터 벗어나 그 바깥으로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오해하지 않기 위해 말해두지만 그것은 회화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해하지 않기 위해 말해두지만 그것은 회화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부정하고자 한다면 이야기는 간단하다. 모든 실험을 멈추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들이 생각하여왔고 실제 제작하여 온 회화의 그 바깥을 나와서 그것과는 다른 회화를 시작하는 것, 자로 그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있어왔고, 그리고 지금도 존재하는 회화와는 다른 것, 그것은 쉽게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존재하는 회화에는 그 만큼의 전통이 있으며, 그 정통을 만들어 낸 만큼의 근거도 잇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유명균은 그 바깥을 나오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바램은 비단 그 한 사람만의 것은 아니다. 표현의 실체 '나는 내 작품의 주체가 되는 표현의 인식 구조가 어쩌면, 이미 존재하여 온 나와는 무관한 미술의 틀(역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라는 의문을 가진다. 이러한 생각들로 인하여 나는 최근의 나의 작업 제작 과정에서 가능한 내 자신의 직접적 의도를 피하려고 하였다. 이것은 작업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제작자의 의도적 요소, 즉 작품의 완성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것들에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제작의 과정에서 내가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못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화면에 색을 칠하고, 그리고, 물감을 덩어리 채로 올려놓고 그것을 고무해라 등으로 단순히 밀착시키는 방법을 반복할 뿐이다. 나는 이러한 단순한 과정을 통하여 가능한 나의 직접적 의도를 배제하려고 한다. 이 제작 과정은 단순히 작업의 시작과 끝의 과정, 그저 단순한 행위의 반복일 뿐 그것이 나의 작품에서 어떠한 표현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써 작용하는 것과는 거의 무관한 상태이다. 다시 말하자면 제작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나의 판단의 과정은 거의 배제되며 무의미한 상태이다. 다시 말하자면 제작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나의 판단의 과정은 거의 배제되며 무의미한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작업에도 완성이라는 과정은 있다. 이 완성의 과정은 나의 작업 과정으로부터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을 완성된 작품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등의 물음들이다. 다시 말하면 작품의 완성을 결정하는 이 과정은 단순한 작업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물을 바라보면서, 저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관한 자신과의 물음 그리고, 그 작업의 결과물을 나의 인식의 구조에서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왜 거부를 해야 하는가에 관한 의문들이다. 이러한 것은 표현의 방식이 사회화되기 이전의 나의 주관적인 표현의 실체에 대한 물음이다. 또한, 이것은 이미 사회적으로 공유화 된 표현의 방식에 대하여, 왜 우리가 운명적으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일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을 가능한 배제한 작업의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에 대한 물음의 과정을 반복함으로, 조금씩 나의 실체에 접근하고자 한다. 유명균 You, Myung Gyun Biography - 1962 한국 부산에서 출생함 - 1985 부산대학교 미술교육과 졸업 - 1994 일본 타마 미술대학원 졸업 개인전 -2003 금산갤러리-서울 -2002 수가화랑-부산 -2002 Q 화랑-도쿄 -1998 전경숙갤러리-부산 -1996 공간화랑-부산 -1995 스페이스 월드 화랑-부산 -1993 무궁화랑-히로시마 -1993 Space 21 Gallery-도쿄 -1990 사린 화랑-요코하마 -1989 G Art Gallery-도쿄 -1986 사인화랑-부산 단체전 및 기획전 -1985 ~87 POINT전-부산 -1986 오오사까현대미술교류전-오오사까현대미술센타 부산작가10인전-갤러리누보,부산 -1989 의태와 상징전-차바현미술관, 치바시 -1991 가나가와 아트 애뉴얼-가나가와현민홀, 요코하마 일본현대미술전-동경도미술관,동경 -1992 종이실험전-이마다테예술관, 이마다테 국제현대미술전-동경도미술관,동경 -1993 일불 종이전-Space 21 Gallery, 도쿄 -1996 1990년대 한국현대미술의 단면전-도쿄국립근대미술관, 도쿄 /오오사까국립국제미술관, 오오사까 -1997 일상의 신화-선재미술관, 경주 -1998 프라미엄 조각 심포지움-후지노시 대지와 바람-미술회관, 서울 -2000 Metamorphosis-부산시립미술관,부산 수 상 -1990 현대미술이마다테종이전-준대상 -1991 OBJECT동경전-대상 -1992 현대미술이마다테종이전-대상 -1993 단남 ART FESTIVAL-우수상 작품소장 - 이마다테예술관 - 이마다테 후레아이 프라자 - 삼성홈플러자 [이 게시물은 금산갤러리님에 의해 2011-02-24 23:01:03 EXHIBITION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