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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 |  AHN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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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Life

생은 마치 중력이 있는 공간에 던져진 물체와 같다. 행위의 결과로 생겨나며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 있는 삶에는 우연과 필연이 마치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한다. 이것을 예측할 수 있을까. 유전자의 조합과 생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변수를 알고있고, 계산할 수 있다면 가능할것이다. 혹은 어떠한 일이 발생하기 전의 초기조건을 이해하면, , 모든 변수를 파악한 후 태어나기 이전 상태로 돌려 계산하면 이론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 두가지 모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생은 사랑의 결과로써 생겨나기에 필연적 이고, 태어난 이상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는 운명에 있지만 그 과정은 무작위(Random)이다.

인간의 역사와 문명은 생이 지니는, 혹은 인류의 생이 속해있는 환경의 무작위성을 여러가지 관점으로 이해해보려고 노력해 온 결과물과 다름 아니다. 때문에 과학을 비롯한 학문이 진보함에 따라 이전에는 우연이었던 많은 것들은 확률로, 기적이었던것은 자연현상으로, 관찰할수 없었던 것들은 사진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이전에는 우연이기때문에, 예측할 수 없기에 인류가 느꼈던 두려움 혹은 숭배의 감정은 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희석되었다. 때문에 배우는 것은 기쁨이며 학문은 두려움을 없애준다고 믿고있었다. 그러나 본 연구자는 일년반 전 외조부님의 죽음을 목도했다. 외조부님은 어린시절에는 난해한, 그래서 무서운 어른이셨다. 어른이 되어 깨달은 사실은 그 난해함의 이유는 학도병으로써 겪으셨던 한국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기인한 것임을 깨달았다. 외조부님은 공부하셨으나 이를 평생 극복하지 못한 학자셨다. 신념을 가지고, 항상 공부하고 학문을 평생 멈추지 않았다고 해서 죽음앞에서 덜 두려운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본 연구자에게 상실감 보다 큰 충격이었다. 해로하던 외조부님을 잃으시고 혼자 남으셔서 급격히 말수가 적어지신 외할머니를 바라본다. 외할머니는 한국 전쟁 중 할아버지와 결혼하셔서 배움을 중단하시고 평생 가족들을 내조하셨다. 그렇다고 늙는다는것, 죽음을 앞에두고 있다는 것이 더 두려운것도, 덜 두려운것도 아니었다. 정말 안다는것은, 지식을 쌓는다는 것은 생을 이해하고 긍정하게 되는 것일까.

본 연구자는 동어반복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의도적인 무작위성을 연출해 이를 촬영했다. 본 연구자는 가족에게 사과를 주고 반복적으로 던지도록 요청해 땅에 떨어지는 과정을 고속 연사사진으로 촬영했다. 그리고 편집 과정에서 떨어지기 위해 던져진 물체가 아닌 떨어져야 하는 운명과 중력을 거스른채 멈추어 있으며, 동시에 구도적인 조화를 이루는 프레임만을 선택해 프린트하는 과정을 통해 문맥이 사라진 순간의 초월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생을 상징하는 중력이 있는 공간에 던져진 물체로는 일관되게 사과를 사용했는데, 종교와 권력의 주체가 바뀌는 역사속에서 가장 오랜시간 살아남은 지식과 운명의 상징이기 때문이며. 익숙한 동시에 심원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사과에는 수많은 상징이 있다. 선악과로 묘사된 사과. 게르만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힘을 지탱하는 사과. 트로이 전쟁을 낳은 황금 사과, 모자에 절을 하는것을 거부한 윌리엄 텔이 아들의 머리위에 놓고 활 시위를 당기게 한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사과. 중력을 발견한 뉴턴의 사과. 동화속 백설공주의 사과. 독일의 암호코드를 해석해 세계대전의 종식을 앞당기고 컴퓨터의 초석을 세웠으나 당시 동성애를 금지하고 있던 영국 정부로 부터 호르몬 처방을 받게 되어 남성성을 읽게 되자 사과에 청산가리를 주사한 후 백설공주의 동화를 떠올리며 가장 순수한 여자가 생을 아무리하듯한입 깨물고 죽어 지금 애플의 마크가 된 엘런 튜링의 사과. 이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심원하고, 설령 이 상징들을 모르더라도 친근한 오브제이다.

삶에 있는 수많은 상징들을 아는 사람도 있고, 공부하는 사람도 있고, 별 상관 없는 사람도 있고, 이해하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한 시대속에 여러가지 언어를 사용하며 뒤섞여 살아간다. 생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의 무작위성으로 가득찬 과정이다. 사진은 그 과정에서 우연과 필연이 교차해 만들어내는 무언가를 기념한다. 본 연구자는 이해한 이에게도 덜 이해한 이에게도 생은 소중한 과정이며 그 일상의 과정에서 우연과 필연이 운명처럼 교차할때 만들어지는 한 순간을 기념하고자 했다.